[정중동]‘폭력’의 기준은 피해자가 판단하는 것

너도, 나도 폭력 피해 사실을 표명하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학교 폭력, 아이돌 그룹 내 따돌림, 가족 간의 갈등 등 사유도 다양하다. ‘폭력 사회’라고 대놓고 광고하듯 이슈가 끊이질 않는다. 피해 사실이 계속해서 폭로되고 있는 가운데, 서로가 변명하고 해명하기 바쁘다.

따돌림 문제는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살아오면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을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누군가는 가해자고, 방관자고, 어쩌면 피해자다. 특히 어린 시절, 이기적이고 철없는 행동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잦다. 문제는 너무나 흔하고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상처는 평생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돌 그룹 내 왕따 논란이 일어난 ‘에이오에이’ ‘에이프릴’ 등의 사례를 보면 가해자가 무심코 저지르는 일들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으로 다가가는지 알 수 있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고 시행하기도 하며, 병원에 다니며 상담을 받는다. 또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도 괴로워한다.

하지만 가해자는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 기억조차 못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현재 학교폭력 가해자라 지목받고 있는 이들이 공통으로 발설하고 있는 말은 ‘기억에 없다’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폭력’의 기준에 대한 모호성이 그 원인인 듯하다. 가해자는 폭력을 ‘폭력’이라고 생각하고 저지르지 않는다. 고의성을 가지고 폭력을 가하는 일도 많지만, 본인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는 일도 잦다. 본인 기준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크고 작은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 그 점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각자 마음에 ‘선’을 그어놓는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지켜야 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어떤 모양으로 어디까지 그어져 있는지는 다 다르지만 우리는 그 선을 통해 상대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다. 또 자신을 방어하며 지킬 수 있다. 허락도 없이 그 선을 넘나드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한 것이다.

폭로 글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 우리는 ‘폭력’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폭로 글의 대부분을 살펴보면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난 일임에도 계속해서 피해자를 괴롭히고 있다. 폭로 글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만큼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로 속이 곪은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가해자는 폭력의 기준을 정의할 수 없다. 그 고통의 크기는 오로지 피해자만이 알 수 있다.

하정윤 편집국장 wjdyoon1408@naver.com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